한 여집사님을 상담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말씀하시기를 남편은 화가 나면
‘히스토리컬(historical)’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혹시
‘히스테리컬(hysterical)’하게 된다는 말인가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대답하기를 말 그대로 ‘히스토리컬’하다는 것입니다. 그 남편은 아내와 싸울 때면
이전의 일들을 하나하나씩 다 끄집어 내어 말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 일이
있었는지 본인은 기억도 나지 않는 일들 조차도 언제, 어디서,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 말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의외로 이전의 일들을 잊지 않는 이런 ‘히스토리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상대방에게서 받았던 상처, 섭섭한 말들, 힘들게 했던 일들,
… 그 사람에 대한 과거의 흔적들을 잊지 않고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용서’의 헬라어 단어는 ‘보내다, 버리다, 떠나게 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용서는 과거의 아픈 기억을 보내는 것,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자신의
마음에서 올라오는 분노의 마음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에게
평화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서 우리의 모든 과거의 죄된 모습을 완전히 떠나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도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또한 다른
사람을 향해 과거의 아프고 섭섭했던 흔적들을 떠나 보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때 비로서 용서 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화평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기억하기보다 떠나 보내심으로 주님께서 주신 평화를 이루어 가는 복된 삶 되시길
축복합니다.
버릴 것은 버리는 삶을 살아가길 더욱 소망하는
김치길 목사